제목 : 낯익은 길목에 담긴 근대사의 함성과 눈물, 서울 도심 투어

위치 : 서울 종로구·중구·서대문구 일대

내용 : 3월에 맞는 ‘서울의 봄’은 숭고하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정동길에 선현의 자취가 내려앉고, 서대문독립공원 담장에 온기가 쌓인다. 서울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있는 공간이 자리한다.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경교장, 정동길, 서대문독립공원 등은 3·1운동 전후의 시대적 사연이 길목마다 깃든 곳이다. 익숙하게 스쳐 지나던 빛바랜 건물이 3월에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서울은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고, 3·1운동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도심의 근대사를 알현하는 템포는 ‘안단테’가 어울린다. 천천히 골목을 거닐고, 역사의 현장을 되새기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마음가짐이 소중하다. 3·1운동과 근대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도심 여행은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이 낱낱이 전시된다.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서울)은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인천, 개성 등과 함께 경기도의 여러 부 가운데 하나인 경성부로 격하되는 시련을 겪었다. 상설전시존에는 강제 병합 이후의 도시 경성을 살펴보는 코너가 있다.


성벽과 궁이 훼손되고 새 길이 뚫린 서울, 일제에 저항하면서도 근대 문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당시 서울 사람들의 삶이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된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인구는 20%가 일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야외전시장에도 시대의 흐름이 이어진다. 1930년대 서울 시내를 운행한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467호)가 복원됐으며,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부재가 과거를 곱씹게 만든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도 의미 깊다.

지난해 11월부터 3월 10일까지 계속되는 〈기증 유물 특별전―딜쿠샤와 호박목걸이〉는 독립선언서 전문과 3·1운동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AP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와 그 가족의 한국 생활 모습과 유품을 전시한다.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가 살던 행촌동 가옥의 이름이다. 테일러가 쓴 3·1운동 기사, 고종의 국장 행렬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3·1운동이 시작되고 기획된 서울, 서울과 함께 3·1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평양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외부 공간은 경희궁으로 연결된다. 광해군 때 건립된 경희궁은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이라는 뜻이다.

영조와 숙종을 비롯해 10명의 왕이 머물렀고,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 화제의 인물이 거주한 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아픈 역사가 있다. 궁궐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개조한 대상이고, 그 풍파의 중심에 경희궁이 있었다.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며 궁궐이 대부분 헐렸고,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는 박문사로 옮겨지기도 했다.

전각과 문이 190여 개 이를 정도로 ‘빛나던’ 궁궐은 지금 숭전전, 자정전 등이 복원된 채 아련하게 남았다. 경희궁을 나선 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한 서울 경교장(사적 465호)으로 이어진다.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 내부에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수립했으며,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해 경교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이 사용한 경교장은 욕실, 집무실, 응접실 등이 복원됐다. 김구 선생은 1949년 경교장에서 서거했다. 경교장은 이후 중화민국 대사관저, 월남대사관, 병원을 거쳐 사적으로 지정되는 풍운의 세월을 겪었다. 내부에는 《백범일지》 초간본, 서거 당시 피 묻은 옷, 밀서 등이 전시된다. 경교장 건너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일본식 주택, 도시형 한옥, 슬래브 집이 있던 새문안동네에 예술을 덧씌워 도시 재생 방식으로 재구성한 곳이다.

개조한 집과 식당 건물은 박물관,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과 카페 등으로 운영 중이다. 지난겨울에는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레스토랑과 한정식집을 개조한 돈의문전시관에는 1960년대 과외방 등 옛 새문안동네 일대의 과거와 동네 사람들 얘기가 담겼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휴식을 취한 뒤에는 정동길을 산책해보자. 정동길에는 근대사의 애환이 담긴 유적이 모여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한 곳이다. 공사관 옆으로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궁을 떠나 걸어간 ‘고종의길’이 복원됐다.


정동극장 뒤 막다른 골목에는 덕수궁의 별채이자 황실 도서관으로 지은 중명전이 있다. 중명전은 궁궐 내에 남은 최초의 근대 건축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1890년대 말 준공된 정동제일교회는 붉은 벽돌로 지은 외관이 도드라진다. 이 교회 이필주 목사 등은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으로 참가했다.

근대사를 더듬는 도심 여행은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이동하며 무르익는다. 서대문독립공원은 3·1운동, 항일 투쟁 등으로 옥고를 치른 선열들을 기리고 그 뜻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자, 현재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공원 내에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었으며, 독립투사를 가두고 고문한 현장이 고스란히 남았다. 옥사 외벽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이곳이 단순히 옛 형무소가 아니라 뜻깊은 역사의 현장임을 강변한다. 지하옥사, 사형장, 망루 등이 보존됐으며,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당시 시국 사범이 수감된 감옥도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옥사 밖으로는 탑골공원에서 옮겨 온 3·1독립선언기념탑과 서재필 선생 동상, 독립문 등이 시대의 봄 산책을 돕는다.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사직터널 윗길로 향하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딜쿠샤의 실제 건물과 만난다. 딜쿠샤는 산크리스트어로 ‘행복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으로 지하1층, 지상2층 벽돌 건물이다. 다가구주택으로 활용되며 잊혔던 딜쿠샤는 테일러의 아들에 의해 재발견돼 등록문화재 687호(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로 지정됐다. 딜쿠샤는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개장을 목표로 내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며, 현재는 외관을 살펴볼 수 있다.

딜쿠샤 앞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의 집터다. 수령 46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행촌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근대사 도심 투어는 딜쿠샤에서 서촌, 통인동으로 걸으며 차분하게 마무리한다. 일제강점기에 생채기 난 서울성곽을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초입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반갑다. 통인동에는 일제강점기 천재 시인 이상의 자취가 담긴 집이 지난해 말 재개관했다.

이상의집은 시인이 1911년부터 20여 년간 거처한 집터 일부에 마련됐다. 뒷마당에는 이상의 흉상이 세워졌으며, 유작을 포함한 자료 150여 점도 만날 수 있다. 이상의집은 마을 주민과 시민을 위해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 일제강점기를 되새기는 도심 투어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어 의미 깊은 봄나들이 코스로 좋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 경교장, 돈의문전시관, 중명전 등은 무료이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위 공간은 매주 월요일에 쉰다.

〈당일 여행 코스〉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경교장→정동길→서대문독립공원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경교장→돈의문박물관마을→정동길
둘째 날 / 서대문독립공원→영천시장→딜쿠샤→이상의집→서촌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경교장, 돈의문전시관) www.museum.seoul.kr
- 돈의문박물관마을 http://dmvillage.info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www.sscmc.or.kr/culture2

○ 문의 전화
-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02)724-0274
- 경교장 02)735-2038
- 돈의문박물관마을 02)739-2981
- 돈의문전시관 02)724-0271
- 중명전 02)771-9952
- 서대문독립공원 02)3140-8305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02)360-8590
- 이상의집 070-8837-8374

○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서울역사박물관 방향 도보 500m.
* 문의 :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한남 IC→한남대교→남산1호터널→종로→서대문역 방향

○ 숙소 정보
- 케이팝호텔 서울역점 : 중구 후암로60길, 02)773-2500,
http://kpophotelseoul.com
- 호텔더디자이너스 종로 : 종로구 수표로, 02)2267-7474,
www.hotelthedesigners.com/jongno
- 이비스앰배서더 인사동 : 종로구 삼일대로30길, 02)6730-1101,
https://ibis.ambatel.com/insadong
- 프레지던트호텔 : 중구 을지로, 02)753-3131, www.hotelpresident.co.kr 


○ 식당 정보
- 덕수정 : 부대찌개, 중구 정동길, 02)755-0180
- 선천 : 한정식, 종로구 인사동14길, 02)734-1970
- 한옥집김치찜 본점 : 김치찜, 서대문구 통일로9안길, 02)362-8653,
http://hanokjib.co.kr
- 수제비와보리밥 : 수제비·파전·동동주, 종로구 자하문로5길,
02)722-6011

○ 주변 볼거리
월암근린공원, 기상청 송월동 별관, 홍난파 가옥, 영천시장, 안산자락길

 

제목 :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 박물관, 서울 망우리공원

위치 : 서울 중랑구 망우동

내용 :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망우리공원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을 더듬어보면 어떨까. 망우리공원은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등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가 잠든 곳이다.

우거진 숲에 고즈넉한 ‘사색의길’이 조성돼 산책하기도 좋다. 뜨겁게 살다 간 근현대 위인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무뎌진 마음에 열정이 피어오를지 모른다.


망우리공원은 서울 중랑구와 경기 구리시 사이에 있다. 망우리공동묘지에서 망우리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망우리공동묘지로 부르는 이가 적잖다. 망우리공동묘지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 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 나무를 심어, 망우리공원은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망우산을 따라 조성한 사색의길 주변에는 물 맑은 약수터도 많다. 공기가 깨끗하고 전망이 시원해 산책이나 조깅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망우리공원 입구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사색의길 출발점이 나온다. 망우산순환도로를 정비해 만든 사색의길은 5.2km에 달한다. 산책로 곳곳에 연보비가 눈에 띈다.

독립운동가와 문화 예술가의 넋을 기리는 비석으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독립운동가 서병호 선생의 연보비에는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고 새겨졌다. 짧지만 강한 글이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 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 하냐”는 조봉암 선생 연보비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본격적인 산책에 나서기 전, 역사인물전시장부터 둘러보자. 망우리공원에 잠든 인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바닥에는 망우리공원 지도가 그려졌다. 오른쪽에는 근심과 걱정을 넣는 ‘근심먹는우체통’과 중랑둘레길 스탬프 투어용 스탬프 함이 있다. 이곳은 망우산에서 용마산으로 이어지는 중랑둘레길 출발점으로, 망우산 이미지가 새겨진 도장을 찍을 수 있다.

길은 입구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순환하는 길이라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다. 왼쪽 길에 들어서 걷다 보면 이태원묘지 합장비 표지판이 나온다.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곳이다.

유관순 열사는 순국 후 이태원공원묘지에 안장됐는데, 일제가 공동묘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해를 분실했다. 당시 연고가 없는 무덤 2만 8000기의 유해를 화장한 뒤 합장했다. 유관순 열사 묘지가 무연고 처리됐기 때문에 이 묘지에 합장됐으리라 추정한다. 지난해 9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연보비가 눈에 들어온다.

민족 대표 33인으로 3·1 독립선언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의 묘(등록문화재 519호)다. 문화재청은 홈페이지에 “〈님의 침묵〉으로 저항문학을 선도하였던 인물로, 이곳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릴 수 있는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큰 곳”이라고 밝힌다. 현재까지 망우리공원에는 한용운과 장정환,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 9인의 무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망우리공원에는 도산 안창호의 흔적도 있다. 도산은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이곳에 묘지가 있었으나, 강남구 신사동에 도산공원이 조성되면서 이장했다. 도산의 비서로 임시정부에 참여한 유상규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망우리공원에 잠들었다. 봄이 되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독립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의 묘지다. 묘비에는 ‘어린이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동심여선(童心如仙)이 적혔다. 어린이를 위해 살다 간 이에 어울리는 글귀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 추모객이 많은 묘지 중 하나는 이중섭 화가의 무덤이다. 화가의 묘비에는 원 안에 두 아이가 꼭 껴안은 모습이 새겨졌다. 후배 차근호의 작품으로, 이중섭의 두 아들을 상징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로 인기를 얻은 박인환의 연보비에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는 〈목마와 숙녀〉 한 구절이 새겨졌다. 지금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어두운 땅속에 묻혔지만, 그가 남긴 시는 아직 살아서 꿈틀거린다.


망우리공원을 둘러보면 묘지라기보다 야외 역사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소중한 공간이다. 망우리공원을 2015년 미래 유산으로 선정한 서울시와 2012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에 잠든 인물 이야기를 담은 책 《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출간한 김영식 작가는 “망우리묘지의 숲에서 시내를 보면 삶과 죽음의 사이에,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내가 서 있음을 느낀다”며 “이 땅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을 돌아보고 궁으로 가던 중 이곳에 발길을 멈춰 “그동안 시름을 모두 잊었다”고 해서 이름 붙은 망우(忘憂). 중랑구가 망우리공원을 역사 문화 벨트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해, 더 아늑하고 멋진 공간으로 바뀔 전망이다.

망우리공원에서 역사 인물을 만났다면,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에서 조선의 왕을 알현할 차례다.

동구릉은 조선왕조 500년 능제(陵制)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유산으로, 왕릉 9기가 있다.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순조의 아들 문조의 수릉이 조성된 1855년 이후로, 이전에는 동오릉, 동칠릉이라 했다. 9기 중 태조의 건원릉이 조선 왕릉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건원릉은 봉분에 잔디 대신 억새를 덮은 점이 독특하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경도 영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구릉은 참나무와 오리나무, 때죽나무 등 숲이 울창해 나들이객이 많다.


봉화산 정상에 있는 아차산봉수대터도 역사적인 장소다. 아차산봉수대는 양주 한이산에서 소식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한 봉수대다. 봉화산 정상은 해발고도 약 160m로 낮지만, 사방이 트여 봉화를 올리기 적당했다. 봉화산은 주택가가 가까워 시민에게 사랑받는 산책 장소로, 4.2km에 이르는 둘레길이 있다.


망우리공원 아래 자리한 중랑캠핑숲이 인기다. 서울 도심 공원에 처음 설치된 오토캠핑장으로, 잔디밭과 바비큐 그릴, 야외 테이블을 갖췄다. 중랑캠핑숲은 가족 단위 오토캠핑을 즐길 수 있는 가족캠프존과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문화존, 생태학습존, 숲체험존, 나들이공원으로 구성되며, 양원숲속도서관도 있어 봄맞이 문학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암벽등반에 관심 있다면 용마폭포공원에 조성된 높이 17m, 폭 30m 중랑스포츠클라이밍장을 이용하자. 클라이밍장 옆에는 용마폭포와 청룡폭포, 백마폭포 등 인공 폭포 3개가 있다. 5월부터 8월까지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인공 폭포라 정해진 시간에 운영하니, 전화로 문의하고 찾아가자.

〈당일 여행 코스〉
망우리공원 여행 / 망우리공원→중랑캠핑숲
동구릉 여행 / 구리 동구릉→아차산봉수대터→용마폭포공원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망우리공원→중랑캠핑숲
둘째 날 / 구리 동구릉→아차산봉수대터→용마폭포공원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중랑구 문화관광
 www.jungnang.go.kr 
- 서울시설공단 www.sisul.or.kr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https://nationaltrust.or.kr
- 문화재청 www.cha.go.kr
- 중랑스포츠클라이밍장 http://jscf.modoo.at

○ 문의 전화
- 중랑구청 문화관광과 02)2094-1814
- 망우묘지관리사무소 02)434-3337
- 구리 동구릉 031)563-2909
- 중랑캠핑숲 02)434-4371~2
- 용마폭포공원 02)2094-2965

○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경의중앙선 망우역 1번 출구, 망우역·망우지구대 정류장에서 270번 버스 이용, 동부제일병원 정류장 하차, 망우리공원까지 도보 약 10분.
* 문의 :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버스] 88번·167번·201번·202번·270번 버스 이용, 동부제일병원 정류장 하차, 망우리공원까지 도보 약 10분.
* 문의 : 서울시교통정보센터 http://topis.seoul.go.kr

○ 자가운전 정보
서울광장→세종대로 광화문 방면→세종대로사거리에서 종로1가 방면 우회전→시조사삼거리에서 삼육서울병원·중랑교 방면 우회전→망우로→망우치안센터·망우리공원 방면 우회전, 직진→망우리공원

○ 숙박 정보
- 메이호텔 : 중랑구 망우로52길, 02)493-1100
- 호텔드씨엘 : 중랑구 동일로, 02)975-9380
- 더홀릭호텔 : 중랑구 망우로50길, 02)439-0082
- 상봉칼튼호텔 : 중랑구 상봉로26길, 02)496-3618,
https://sbcarltonhotel.modoo.at

○ 식당 정보
- 서옹메밀막국수 : 막국수·들깨칼국수, 경기 구리시 경춘로,
031)568-7006
- 용마해장국 : 해장국, 중랑구 용마공원로5길, 02)2209-5938
- 농부보쌈 : 보쌈, 중랑구 용마산로, 02)2207-9291
- 망우찜쌈밥 : 쌈밥, 중랑구 용마공원로2길, 02)437-0175

○ 주변 볼거리
봉화산옹기테마공원, 서울장미공원, 성덕사, 우림시장

 


제목 : “나는 홍범식의 아들이다” 2대에 걸친 독립운동의 근거지, 괴산 홍범식 고가

위치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내용 :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기자, 아버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를 본 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일완 홍범식이고, 아들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해 끝내 변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나는 홍범식의 아들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3월에 괴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홍범식과 홍명희가 태어난 홍범식 고가에 가보자.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국권을 빼앗는다.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대사헌 송병선, 시종무관 민영환, 외교관 이한응, 러시아 공사 이범진, 금산군수 홍범식, 재야의 선비 황현 등 여러 대신과 선비들은 죽음으로 항거했다.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백성의 독립 의식을 깨우쳐 항일운동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금산군수 홍범식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아 내가 사방 100리를 지키는 몸이면서도 힘이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니 속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탄식하며 자결했다고 한다.

홍범식은 유서를 여러 장 남겼는데, 일부는 일경에게 빼앗기고 다행히 아들에게 남긴 유서가 있다.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는 어떻게 하든지 조선 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


홍명희는 아버지의 유서를 액자에 넣어 책상 앞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어쩌면 이 유서는 모든 조선 사람에게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뒷날 홍명희는 자식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홍범식의 아들이다.”

괴산 읍내는 유유히 흐르는 동진천을 중심으로 관공서와 상가,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작은 야산에 자리한 괴산보훈공원 옆에 홍범식 고가가 있다. 뒤로 장군봉이 우뚝하고, 앞으로 동진천이 흐른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아늑한 느낌이 드는 명당이다.


홍범식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조선의 대표적 명문가로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홍씨 집안이다.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면서 벼슬길에 들어 태인군수와 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태인군수 시절엔 의병 부대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를 설득해 무고한 백성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했고, 금산군수를 지내면서는 국유화될 위기에 놓인 백성의 개간지를 사유지로 인정해주는 위민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홍범식 고가로 들어서면 사랑채를 만난다.

홍범식의 큰아들 홍명희는 사랑채 가장 왼쪽 방에서 3·1운동을 준비했다고 전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3·1운동이 일어나 1500여 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홍명희는 투옥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사랑채에서 중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는 정면 5칸에 측면 6칸의 ‘ㄷ 자형’으로, 일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해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다. 이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채에서 나오면 길은 장독으로 이어진다. 제법 큰 장독대와 광채가 양반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홍범식 고가를 살펴본 뒤에는 그 옆에 자리한 괴산보훈공원과 3·1운동이 일어난 괴산산막이시장 일대를 둘러보자. 홍범식 고가 옆으로 난 계단을 조금 오르면 괴산보훈공원으로 들어선다.

대묘산 정상 일대에 건립된 괴산보훈공원은 괴산에 흩어진 6·25참전공적비, 무공수훈자공적비, 베트남참전탑 등을 이전하고 충혼탑과 충렬탑을 새롭게 건립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충렬탑에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여학생 동상이 있다. 괴산의 3·1운동이 떠올라 묵념을 올린다.


충혼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울창한 솔숲이 이어진다. 작은 봉우리에서 괴산 읍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동진천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봉우리에서 내려오면 수진교를 건넌다. 천변 느티나무 아래 만세운동유적비가 쓸쓸하게 섰다. 유적비 앞부터 괴산산막이시장 거리가 이어지는데, 여기서 들불처럼 3·1운동이 일어났다. 충북에서 처음 일어난 3·1운동이고, 이후 충북 전역으로 퍼졌다.

홍범식 고가에서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달천을 만나고, 달천 변 제월대 절벽 위에 고산정이 자리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벽초홍명희문학비가 반긴다.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는 홍명희의 말이 새겨졌다.


경성(서울)에서 활동하던 홍명희는 1918년 증조모가 별세하자 괴산으로 돌아온다. 3·1운동 이후 가세가 기울어 가택을 처분하고 제월리로 이주한다. 암담한 제월리 시절, 제월대가 그의 마음을 달래준다. 제월대에는 조선 선조 때 충청관찰사 유근이 지은 고산정이 있다. 고산정에 오르니 달천이 유장하게 흐르고,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진다. 홍명희는 고산정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제월대 아래 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고 한다.


잠시 제월리에서 심신을 추스른 홍명희는 다시 경성으로 올라가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정주 오산학교장, 신간회 발족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1928년 11월 21일 〈조선일보〉에 《임꺽정》 연재를 시작한다. 이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옥중에서도 집필했지만, 1937년 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후 전시 총동원 체제가 깊어짐에 따라 연재는 1939년 7월 영원히 중단됐다.

《임꺽정》은 ‘민중의 삶을 탁월하게 표현한 역사소설’ ‘조선말 어휘의 보고’ 등으로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제 괴산의 명소를 둘러볼 차례다. 제월대에서 달천을 따라 5분쯤 차를 몰고 가면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가 나온다. 김시민 장군은 임란삼대첩에 드는 진주성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충청도 천안 출신으로, 선산이 괴산에 자리해 이곳에 사당이 세워졌다. 사당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졌고, 사당 뒤에 묘소가 있다.


충민사와 가까운 성불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었다. 휴양림은 성불산산림휴양단지에 자리한다. 휴양단지에는 휴양림, 생태공원, 미선향테마파크, 생태숲학습관 등이 조성되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 특히 봄에 미선향테마파크의 미선나무 군락지에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룬다.


다음 날은 괴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 좋은 연하협구름다리를 찾았다. 구름다리는 괴산댐 안에 형성된 괴산호를 가로지르며, 길이 134m에 폭 2.1m다. 다리 중간에 서면 흔들흔들 스릴이 넘치고, 여기서 보는 괴산호가 절경이다. 구름다리는 괴산의 명품 걷기 길인 산막이옛길과 충청도양반길을 이어준다. 어느 길을 택하든 괴산호의 절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수변을 따라 호젓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괴산 여행을 마무리한다.


〈당일 여행 코스〉
괴산 홍범식 고가→괴산보훈공원→만세운동유적비→고산정과 제월대→충민사→연하협구름다리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괴산 홍범식 고가→괴산보훈공원→만세운동유적비→고산정과 제월대→충민사→성불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 연하협구름다리→산막이옛길(혹은 충청도양반길) 걷기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괴산군 문화관광 www.goesan.go.kr
- 성불산자연휴양림(성불산산림휴양단지) www.seongbulsan.kr

○ 문의 전화
- 괴산군청 문화체육관광과 043)830-3453
- 성불산자연휴양림 043)830-2679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괴산,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7회(06:50~20:10) 운행, 약 2시간 소요. 괴산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괴산 홍범식 고가까지 도보 10분.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괴산시외버스공용터미널 043)833-3355

○ 자가운전 정보
· 중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 IC→국도19호선→괴산 홍범식 고가
· 중부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음성 IC→국도37호선→괴산 홍범식 고가

○ 숙소 정보
- 성불산자연휴양림 : 괴산읍 충민로기곡길, 043)830-2679,   
www.seongbulsan.kr
- 제월대펜션 : 괴산읍 제월로, 043)833-8200, www.jewol.co.kr
- 호텔웨스트오브가나안 : 연풍면 수옥정길, 043)833-8814,
www.westofcanaan.com

○ 식당 정보
- 기사식당 : 올갱이(다슬기)해장국, 괴산읍 읍내로, 043)833-5794
- 원조주차장식당 : 올갱이해장국, 괴산읍 읍내로, 043)832-2673
- 다래정 : 장수자연산버섯전골, 괴산읍 동진천길, 043)832-1246

○ 주변 볼거리
산막이옛길, 충청도양반길, 화양계곡, 쌍곡계곡 등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천안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생가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독립기념관) /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유관순 열사 생가)

내용 :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봄, 아이들 손잡고 충남 천안으로 떠나보자. 감동과 교훈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되새겨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먼저 목성읍 흑성산 아래 들어선 독립기념관으로 가자.

독립기념관이 탄생한 계기는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이 한국에 관련된 내용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수정한 역사 왜곡 때문이다. 1982년 8월 28일에 독립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날은 국권피탈 72년 하루 전날이다. 이후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 결과 500억 원이 모였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1986년 8월 15일 개관 예정이었지만, 열흘 남짓 앞두고 화재가 난 것. 결국 이듬해 8월 15일 개관했다.


독립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무수한 외침을 극복하고 자주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보고, 겨레의 독립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겨레의탑’을 만난다. 높이 51m로, 고개를 힘껏 젖혀야 꼭대기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에 설 때부터 방문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겨레의탑을 지나면 또 한 번 놀란다. 방문객 앞에 버티고 선 ‘겨레의집’은 웅장함 자체다. 길이 126m, 너비 68m, 높이 45m에 달하는 동양 최대 기와집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했으며, 기념 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와는 구리로 제작했으며, 현판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썼다. 겨레의집 내부에는 ‘불굴의 한국인상’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한 무리 사람들이 힘찬 동작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이다. 온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연 순국선열을 상징한다. 겨레의집 앞으로 태극기 815기를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한마당’이 펼쳐진다.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
독립기념관은 7개 전시관과 입체영상관으로 구성된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전시관이 넓어,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미리 정보를 알고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7개 전시관에서는 일제의 잔인한 침략상과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문헌 자료와 미니어처, 영상물이 이해를 돕는다.


제1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인 1860년 이전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외세 극복의 역사를 정리한다. 고인돌 모형, 가야 기마 무사상 모형, 거북선 재현 모형 등이 눈길을 끈다. 제2전시관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1860년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고, 제3전시관은 일제에 항거한 의병 전쟁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 등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제4전시관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가 감성을 자극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독립군과 광복군의 흔적이 있는 제5전시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밀랍 모형이 눈길을 끄는 제6전시관, 관람객이 독립 만세를 불러보는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제7전시관도 발길을 붙든다.


전시관 위주로 살펴봐도 좋고, 인근 숲길 탐방 등과 함께 일정을 짜도 좋다. 독립기념관은 주변에 숲과 호수가 어우러지고 캠핑 공간과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 손색이 없다. 첨단 디지털 시스템으로 화려한 영상과 특수 효과를 체험하는 입체영상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홈페이지에서 전시관 해설 신청도 가능하다.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된 것이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아우내를 한자로 쓴 지명이 병천(竝川)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다. 3월 10일 전국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열사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이것이 4월 1일 일어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당시 300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가 죽고, 자신도 체포되어 3년 형이 선고된다. 재판 당시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겠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유 열사는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며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졌다. 옥중에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열사는 이듬해 4월 이왕세자(영친왕)가 도쿄(東京)에서 결혼하는 것을 기념해 1년 6개월로 감형됐지만,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한다.


유관순 열사 생가는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 당시 일본 관헌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빈터만 남은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했으며, 봉화 터와 함께 사적 230호로 지정됐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졌고,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가 있다. 생가에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까지 10여 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열사의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펼친 아우내장터 일대는 지금 병천순대거리가 조성됐다. 순대를 내는 식당 50여 곳이 들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60년대 인근에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팔며 시작됐다고 한다. 당면 대신 채소와 선지로 속을 꽉 채운 병천 순대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천안은 미술 테마 여행으로 즐겨도 좋다. 천안종합터미널 앞에 조성된 아라리오광장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필수 순례지로 꼽히는 곳.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야외 갤러리다.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장 옆에 자리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열린다.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날린 이종각의 작품이 있는 리각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대지 1만 5700㎡에 펼쳐진 야외조각공원과 830㎡에 이르는 실내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근사한 찻집도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아라리오광장과 리각미술관에서 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이 가깝다. 예쁜 벽화가 그려진 800여 m 골목이 방문객을 반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야외 미술관에 온 느낌이 든다. 천안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 나오고, 걸어도 15분이 채 안 걸려 접근이 편하다.


〈당일 여행 코스〉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생가→병천순대거리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생가→병천순대거리
둘째 날 / 아라리오광장→리각미술관→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시민의행복을위한천안의흥(천안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cheonan.go.kr
- 독립기념관 www.i815.or.kr
- 아라리오갤러리 www.arariogallery.com
- 리각미술관 http://ligakmuseum.co.kr

○ 문의 전화
- 천안시청 문화관광과 041)521-5173
- 독립기념관 041)560-0114
- 유관순열사기념관 041)564-1223
- 아라리오갤러리 041)551-5100
- 리각미술관 070-4111-3463

○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천안역, 무궁화호 하루 20여 회(05:56~22:50) 운행, 약 1시간 10분 소요. 천안역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25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천안,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20분 간격(06:00~다음 날 00:20) 운행, 약 1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5~20분 간격(06:00~22:20) 운행, 약 1시간 20분 소요. 천안종합터미널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30분 소요.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전철] 서울역-천안역, 지하철 1호선 50여 회(06:48~22:27) 운행, 약 2시간 소요. 천안역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25분 소요.
* 문의 :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목천(독립기념관) IC→목천·독립기념관 방면→독립기념관

○ 숙박 정보
- E천안호텔 : 서북구 양지21길, 041)592-0000, www.cheonanhotel.kr
- 천안상록호텔 : 동남구 수신면 수신로, 041)560-9114,
  www.sangnokresort.co. kr
- 굿모닝호텔 : 서북구 차돌들길, 041)578-6363

○ 식당 정보
- 충남집순대 : 순댓국, 동남구 병천면 충절로, 041)564-1079
- 아우내한방순대 : 순대,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041)555-9833
- 쪽문만두 : 만두, 동남구 수선정길(남산중앙시장 내), 041)562-5447
- 평양냉면 : 순대·만둣국·녹두부침, 동남구 큰시장길(남산중앙시장 내),
041)551-4851

○ 주변 볼거리
각원사, 천안홍대용과학관, 태학산자연휴양림

 


제목 :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완도 소안도

위치 : 전남 완도군 소안면 소안로

내용 : 소안도는 아름다운 저항 정신이 깃든 섬이다. 암울하고 참담한 일제강점기를 꿋꿋이 버텨냈다. 1년 내내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도 소안도의 자랑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소안항까지 하루 10∼12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여객선 3척이 운항하는데, 소안도의 항일 정신을 기리려는 듯 이름이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어느 여객선을 타도 소안도의 자부심이 절로 느껴진다. 화흥포를 출발한 여객선은 노화도 동천항을 거쳐 1시간 만에 소안도 소안항에 닿는다.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푯돌을 만난다. 가슴이 뭉클하다.


소안도는 어떻게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 되었을까? 먼저 소안항일운동기념관으로 가자. 소안항에서 출발해 소안면 소재지를 지나면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지척이다. 가는 길에 태극기가 유난히 많다. 소안도는 일제에 저항한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태극기의 섬으로 거듭났다.

소안도 주민 1300여 명의 집과 도로 곳곳에 태극기를 게양한 것이다. 태극기 게양은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른 규정이 있다. 아무 때나 게양할 수 없기에 완도군은 소안도에서 365일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소안도에 연중 펄럭이는 태극기가 무려 1500여 기. 소안도가 태극기의 섬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겨볼 일이다.
소안도는 예부터 달목도라 했다. 초승달처럼 허리가 잘록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안도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본래 남쪽과 북쪽 2개 섬이었다.

파도가 실어 온 퇴적물 덕분에 사주로 연결됐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이 사주에 있어 동서로 바다가 훤히 보인다. 기념관이 위치한 곳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모금으로 세운 사립소안학교가 있던 자리라 의미도 깊다. 기념관과 함께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복원된 사립소안학교가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끈질긴 저항 정신을 그대로 녹여낸 곳이다. 기념관은 영상실과 전시실로 나뉜다. 영상실에서는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국 항일운동 지도가 보인다.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린다. 세 지역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안도에서는 평화적 시위와 무력 항쟁, 교육 운동과 노농 운동, 비밀결사와 법정투쟁, 섬 주민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등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비롯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완도 본섬에서 한참 떨어진데다 인구가 6000여 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전시관은 진(盡, 온 힘을 다하다) 인(人, 사람이 희망이다), 사(事, 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 대(待, 힘을 모아 막아내다), 천(天, 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 명(命, 힘을 보태 강해지다)을 테마로 항일운동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관 중심에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있고, 천장은 다양한 태극기로 수놓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1920~1930년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소안도 기사, 독립운동가의 형사판결 원본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도 전시된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작점이다. 1909년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를 비롯한 5명은 일본 선박의 남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해 거친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당사도등대가 생긴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당시 불빛을 밝히던 등명기를 파괴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 바다에 빠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등대 주변에는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일전적비와 광복 후 파괴된 등대원추모비 일부가 역사의 증인처럼 오롯이 섰다.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된다. 소안도는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는데,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토지를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였다. 일본과 조선 왕실을 상대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13년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소송 승리의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1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인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액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에는 일장기가 없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노화도를 비롯한 주변 섬뿐 아니라 해남과 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사립소안학교는 일제에 ‘항일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1927년 강제 폐교된다. 소안도 주민은 격렬히 항거했고, 학교를 다시 열기 위해 탄원서를 돌리기도 했다. 이 일로 소안도 주민 6000여 명 가운데 800명이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 되어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주민들은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살자회 등 항일 비밀결사를 만들어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벌였다. 감옥으로 끌려간 이웃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잤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소안도 항일운동의 중심에는 송내호 선생이 있다. 사립소안학교의 전신인 사립중화학원을 설립해 교육에 힘썼고, 이후 사립소안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1919년 경성(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불과 2주 뒤, 완도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비밀결사 수의위친계를 조직했으며 배달청년회, 소안노농대성회, 살자회 등에 참여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수감돼 이듬해인 1928년 세상을 떠났다.


사립소안학교는 지난 2003년 복원돼 평생학습원과 작은도서관으로 운영 중이다. 작은도서관은 시간 내서 들러볼 만하다. 아늑한 공간에 동화책, 소설책 등이 빼곡하다. 소안도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 《노래를 품은 섬 소안도》를 읽어보기 바란다.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제 소안도를 한 바퀴 둘러보자.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앞으로 난 길은 소안도 남쪽 맹선리, 진산리, 소진리, 부상리, 미라리를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도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 해변, 제주 한라산과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전망대 등 진경을 볼 수 있다.


맹선리로 방향을 돌리면 가장 먼저 완도 맹선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40호)을 만난다. 해풍을 막아주는 방풍림과 물고기를 불러 모으는 어부림 구실을 하는 숲이다.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수가 빽빽하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구한말 소안도 주민이 무단으로 들어와 살던 일본인 거주지를 불태운 항일의 원조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맹선리를 지나면 소안도 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고갯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 물치기미전망대가 있다. 당사도와 그 너머로 추자도가 보이고, 맑은 날은 제주도의 한라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당사도 왼쪽 끄트머리에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당사도등대가 보인다.


고갯마루를 내려가면 진산리다. 주먹만 한 몽돌이 깔린 진산해변은 둥글게 호를 그리는데, 잔잔한 가운데 몽돌을 파고드는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진산리에서 부상리를 거쳐 가면 잘 알려지지 않은 전망대이자 드라마 촬영지를 만난다. 부상리 마을을 지나 한 굽이 올라서면 나오는 해맞이일출공원이다.

숲길을 따라 200m 정도 가면 해안 절벽 꼭대기에 닿는다. 서쪽으로 대모도와 청산도, 완도의 끝 섬 여서도가 나란하고, 남쪽은 사수도 너머로 제주도가 가깝다. 벤치에 앉아 너른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쉬기 좋다. 절벽 아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은신한 해안 동굴도 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미라리가 지척이다. 몽돌이 예쁜 미라해변과 완도 미라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39호)이 한데 어울린다. 미라리 상록수림은 해송이 가장 많고, 생달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특히 숲에서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거대한 해송과 2그루와 바다가 그림 같다.


소안도에서 완도로 갈 때 경유하는 노화도는 다리 하나로 보길도와 이어진다. 완도로 돌아가기 전 노화도 동천항에 내리면 보길도 여행을 덤으로 얻는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둔의 삶을 찾아 제주도로 가다 운명적으로 만난 섬이다.

윤선도가 이곳에서 지낸 흔적은 보길도윤선도원림(명승 34호)에 고스란히 남았다.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에 세연정을 지어 풍류를 즐겼고, 〈어부사시사〉처럼 주옥같은 작품이 탄생했을 곡수당, 낙서재를 바라보며 유유자적 다도를 즐겼을 동천석실, 85세에 화려한 삶을 마감한 낙서재까지 고산의 혼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10분 정도 산행해야 하는 동천석실은 꼭 가보자. 그곳에서 연꽃을 닮은 부용동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일 여행 코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소안도 일주(완도 맹선리 상록수림-물치기미전망대-진산해변-해맞이일출공원-완도 미라리 상록수림)→가학산 등산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소안항일운동기념관→소안도 일주(완도 맹선리 상록수림-물치기미전망대-진산해변-해맞이일출공원-완도 미라리 상록수림)→가학산 등산
둘째 날 / 보길도윤선도원림(곡수당과 낙서재-동천석실)→예송갯돌해변→우암송시열글씐바위→완도수목원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완도문화관광 www.wando.go.kr/tour
- 소안항일운동기념관 http://bizjhp.cafe24.com

○ 문의 전화
- 완도군청 관광정책과 061)550-5412
- 완도군관광안내소 061)550-5151~3
- 소안항일운동기념관 061)552-0516
- 보길면관광안내소 061)553-5177
- 보길도윤선도원림 061)553-5632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완도,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4회(08:10~17:20) 운행, 약 5시간 소요. 완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여객선터미널까지 셔틀버스로 이동.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hticket.co.kr   완도공용버스터미널 061)552-1500
[여객선] 완도-소안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06:50~17:20) 운항, 1시간 소요(노화도 동천항 경유).
* 문의 : 화흥포여객선터미널 061)555-1010 소안도여객선터미널
061)553-8177

○ 자가운전 정보
남해고속도로 서호학산 IC→지방도819호선 13.4km 직진, 학산교차로에서 강진 방면 국도2호선→월산교차로에서 완도 방면 국도13호선→완도대교 건너 원동교차로에서 군외 방면 국도77호선으로 좌회전, 8.5km 직진→청해포구촬영장 끼고 우회전, 510m 이동→청해진서로로 우회전, 약 1.9km 직진→화흥포길로 우회전→화흥포여객선터미널→소안도여객선터미널→소안로 따라 2.6km 직진→소안항일운동기념관

○ 숙박 정보
- 미라펜션 : 소안면 소안로, 061)552-4711,
http://061-552-4711.kti114.net
- 소안그린펜션 : 소안면 소안로, 010-8070-1259,
https://cafe.naver.com/soannhgreen
- 동남펜션 : 소안면 소안로232번길, 010-3607-7938, http://동남펜션.com
- 미소펜션 : 소안면 소안로538번길, 061)555-3667,
http://soanmiso.com
- 블랙스톤펜션 : 보길면 예송로, 061)554-1009,
http://blackstonepension.co.kr
- 해그림펜션 : 보길면 보길동로, 010-9194-6254, www.haegrim.co.kr
- 전라남도완도자연휴양림 : 완도읍 대야일구1길, 061)550-3570,
http://forest.jeonnam.go.kr
- 두바이모텔 : 완도읍 해변공원로, 061)553-0688
- 무릉도원한옥집 : 군외면 청해진로, 061)552-4779,
https://0615524779.modoo.at

○ 식당 정보
- 소안도맛집 : 백반, 소안면 소안로, 061)555-9966
- 작은섬식당 : 백반, 소안면 소안로, 061)552-7088
- 바다를담은면 : 바다를담은해조비빔밥, 군외면 초평길, 061)555-9988, https://badam.modoo.at
- 은혜기사식당 : 백반정식, 완도읍 개포로130번길, 061)552-2774

○ 주변 볼거리
청해포구촬영장, 완도수목원, 완도타워와 완도모노레일, 장도청해진장보고유적, 청산도


제목 : 독립운동의 성지에 가다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내앞마을, 임청각

위치 : 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내앞마을) / 안동시 임청각길(임청각)

내용 : 1919년 3월 1일 경성(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독립을 염원하는 기운을 타고 3월 13일, 경북 안동에 이르렀다. 이날 울려 퍼진 만세 소리는 보름간 계속됐으며, 14회에 걸쳐 약 1만여 명이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었다. 100년 전 만세 함성을 따라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선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그동안 역사의 뒤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가자.

1894년 갑오 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을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소개한 곳이다. 전시 관람은 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의병 항쟁과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만주 지역의 항일 투쟁, 의열단과 광복군 전투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깊이 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안동은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 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 유림이 생겨난다. 혁신 유림은 국권을 빼앗긴 이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 투쟁을 이어가는데, 가족과 친지 등 이들을 따라 망명한 사람이 1911년에만 2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험난한 상황에 물심양면 독립군을 도운 이들이 없었다면 만주의 항일 투쟁은 더욱 어려웠을지 모른다.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다. 도쿄(東京)에서 법정투쟁을 벌인 박열은 문경, 의열단 김시현은 안동이 고향이다. 김시현은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다.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도 영양 출신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모델로 한다. 남자현은 1933년 하얼빈(哈爾濱) 감옥에서 풀려나 숨을 거두면서까지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겼다.


전시관에는 일제의 고문 시설인 벽관 체험을 비롯해 독립선언서 등사하기, 비밀 요원이 되어 미션 수행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아이들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야외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린 추모벽이 있다. 전국의 독립 유공자 1만 5000여 명 가운데 경북 출신이 약 2160명이다. 추모벽에 끝없이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바로 곁에 의성 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 있다. 안동 지역 애국 계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이곳에서 처음 열렸다. 당시 내앞마을은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의 요람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시골이다.


내앞마을 사람들은 일제 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싸웠다. 이 가운데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김동삼과 일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이 있다. 자기 집을 내주며 협동학교를 후원한 김대락은 나라를 잃은 뒤 만주로 떠났는데, 이때 마을에서 150여 명이 그와 함께 망명했다고 한다. 김대락은 힘겨운 상황에도 만주의 생활과 활동을 기록한 《백하일기》를 남겼다.

마을에는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는 듯 일송 김동삼의 생가와 협동학교 교사(校舍)로 쓰인 ‘백하구려(白下舊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임청각이다. 활짝 연 임청각 대문에는 ‘국무령 이상룡 생가’ 현판이 걸렸다. 고성 이씨 종택인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자, 3대가 독립 투쟁에 나선 명실상부 독립운동가의 집이다.

지난해 이상룡의 손부 허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서훈되며 이 집에서 독립 유공자 10명이 배출됐다. 임청각 안에 있는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독립 유공자 증서가 나란히 걸렸다. 임청각 내부에 마련된 작은 전시관에는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임청각은 원래 민간 살림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99칸 가옥이지만, 지금은 절반가량이 남았다. 독립운동가가 많은 임청각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본이 맥을 끊겠다며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됐다.

이 사연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소개하며 널리 알려졌다. 다행히 임청각 복원이 결정돼, 몇 년 뒤에는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임청각은 내부 관람이 가능하며, 고택 체험도 운영한다. 독립운동가의 집이자 500년 역사가 있는 고택에서 묵어가는 하룻밤은 그야말로 특별하다. 한지를 곱게 바른 전통 한옥의 고풍스럽고 아늑한 기운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 쌀쌀한 초봄, 뜨끈한 아랫목에 손발을 넣으면 추위에 움츠러든 몸도 사르르 녹는다. 이왕이면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사랑채에 묵어보자. 긴 밤 꿈속에서 한평생 독립을 향한 길에 섰던 그의 삶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에는 임청각 뒤쪽 담장을 따라 난 소담길을 걸어보자. 무궁화가 곱게 핀 길을 걷다 보면 이상룡 선생의 강인한 정신과 신념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밤이 길게 느껴진다면 월영교를 추천한다. 안동댐 아랫자락에 놓인 월영교는 밤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늦은 시간에도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월영교에는 ‘원이 엄마 편지’로 알려진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안동시 택지조성 중 발견된 무덤에서 무려 400년이나 된 미라 상태의 시신과 한글 편지가 발견됐는데, 병든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슬픔과 사랑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월영교에는 남편의 쾌유를 바라며 자기 머리카락을 넣어 미투리를 만든 원이 엄마의 마음이 담겼다. 미투리 모양을 본뜬 다리를 건너면 괜스레 마음이 애틋해진다. 월영교 앞에 음식점과 카페가 있어 안동의 음식을 맛보며 쉬었다 가기도 좋다.
다음 날은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보자.

도산서원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을 모신 곳이다.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난 퇴계는 고향에 내려와 학문에 힘썼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로운 풍경 속에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과 퇴계 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건립한 도산서원이 앞뒤로 자리한다. 1575년(선조 8)에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도산서원 현판은 명필가 한석봉이 썼다.


도산서원 곳곳에 이황의 교육과 학문에 대한 철학이 묻어난다. 제자들이 기거한 ‘농운정사(隴雲精舍)’는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다. 농운정사는 평면이 일반적으로 잘 짓지 않는 ‘工 자형’인데, 공부(工夫)한다는 뜻을 담은 것

이다. 옥진각에는 퇴계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며, 그의 학문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과 만나는 공간이다. 독립과 민족정신을 담은 시를 쓴 이육사는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 〈광야〉를 비롯해 수십 편을 남겼다.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염원한 작품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육사는 국외를 오가며 독립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으로, ‘이육사’라는 필명에서 그의 투철한 독립 의식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이 엿보인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 사건(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1년 7개월간 옥살이하는데, 이때 수인 번호가 264였다.

이후 일본에 저항하는 의미로 이름을 이육사(李陸史)로 지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첫 옥고를 치른 이래, 1944년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총 17차례 수감 생활을 한 그는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독립을 향한 불꽃같은 열망은 그의 작품에 남아 여전히 활활 타오른다. 전시관 2층 끝에 이육사의 고향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문학카페 노랑나븨’가 있다. 차 한 잔 마시며 이육사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글로 남겨보자.

〈당일 여행 코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내앞마을→임청각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내앞마을→임청각→월영교
둘째 날 / 이육사문학관→도산서원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안동관광 www.tourandong.com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http://815gb.or.kr
- 임청각 www.imcheonggak.com
- 도산서원 www.dosanseowon.com
- 이육사문학관 www.264.or.kr


○ 문의 전화
- 안동관광 문의 054)856-3013, 840-6591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054)820-2600
- 임청각 054)859-0025
- 도산서원(관광해설사 문의) 054)840-6599
- 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7회(06:00~22:30) 운행, 약 2시간 5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1회(06:10~22:00) 운행, 약 2시간 40분 소요. 안동터미널 정류장에서 11번 버스 이용, 천전(독립운동기념관) 정류장 하차.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까지 도보 약 5분.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안동터미널 1688-8228, www.andongtr.co.kr 

○ 자가운전 정보
중앙고속도로→서안동 IC에서 서안동·경북도청 방면 오른쪽→서안동 IC 안동 방면 3시 방향→경서로→경동로→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 숙박 정보 
- 지례예술촌 :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054)852-1913, www.jirye.com
- 수애당 : 임동면 수곡용계로, 054)822-6661, www.suaedang.com
- 전통리조트구름에 : 안동시 민속촌길, 054)823-9001, 
 www.gurume-andong.com  
- 안동그랜드호텔 : 안동시 관광단지로, 054)851-9000,
www.andonggrandhotel.com
- 안동리첼호텔 : 안동시 관광단지로, 054)850-9700,
www.richell-andong.co.kr

○ 식당 정보
- 까치구멍집 : 헛제삿밥, 안동시 석주로, 054)855-1056
- 묵향 : 한우, 안동시 경동로, 054)840-7710

- 안동대가찜닭 : 찜닭, 안동시 번영길, 054)856-7888, www.대가찜닭.kr
- 안동간고등어직영식당 : 간고등어, 안동시 석주로, 054)859-2767

○ 주변 볼거리
봉정사, 병산서원, 안동하회마을, 부용대, 하회세계탈박물관,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안동물문화관,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유교문화박물관,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유교랜드 등

 


제목 : 약산 김원봉 따라 항일 독립운동 산책,
밀양 의열기념관&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위치 : 경남 밀양시 노상하1길(의열기념관) / 밀양시 석정로(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내용 :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를 찾으며 한 말이다. 이 영화에 1200만이 넘는 관객이 들면서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밀양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약산이 태어난 집터에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김원봉을 소개하는 글과 함께 ‘의열 투쟁’의 주요 연표가 보인다. 이어지는 대형 스크린에는 약산과 의열단의 항일 독립 투쟁 관련 영상이 펼쳐진다. 조선의용대 시절 약산이 연설하는 영상도 있다. 학생 때부터 웅변으로 대중을 휘어잡았다는 약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형형한 눈빛은 지금도 듣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1898년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감천리 57번지(현재 밀양시 노상하1길 25-12)에서 태어난 김원봉은 어린 시절부터 항일 독립 의식이 투철했다고 한다. 보통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본 왕의 생일 축하 행사를 위해 나눠준 일장기를 화장실에 처박았을 정도.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김원봉은 자퇴했다.

이 일을 함께한 인물이 이웃에 사는 동생 윤세주다. 두 사람은 뒷날 함께 의열단을 만들면서 항일 독립운동의 동지가 된다. 의열기념관 바로 옆 공터가 윤세주의 생가 터다. 지금 이곳에는 미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일제와 전투 중에 눈감은 윤세주 열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보통학교를 자퇴한 약산과 윤세주는 몇 년 뒤 밀양의 동화학교에 입학했다. 충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선비의 고장 밀양에서는 일찍이 민족 교육에 힘썼고, 그 중심에 동화학교가 있었다. 밀양이 독립운동의 요람이 된 것도 이런 교육의 영향이 컸다. 마침내 독립운동에 투신할 뜻을 세운 약산은 중국으로 떠나, 당시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다.

밀양에 남아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윤세주는 일제의 검거를 피해 약산을 찾아갔다. 그해 11월 만주 지린(吉林)에서 조선 청년 10여 명은 “천하의 의로운 일을 열렬히 실행하기로 맹세”했다. 이름만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의열단이 탄생한 것이다. 의열기념관 2층에는 이들이 모여 의열단을 결성한 ‘반씨 주택’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의열단은 식민 지배자와 민족 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 지배 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정규 병력으로 맞설 수 없는 일제에 대항해 무력 투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김익상과 이종암 등이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육군대장을 저격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이 모든 투쟁의 배후에 의열단장 김원봉이 있었다. 약산의 아내 박차정도 항일 투쟁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르고 의열단원인 오빠의 도움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하고 김원봉과 결혼했다. 박차정은 항일운동을 계속했으나, 안타깝게도 해방 1년을 남기고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의열기념관 2층에서 박차정의 독립운동 활동을 자세히 소개한다.

의열기념관 일대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해천은 의열기념관 앞을 흐르는 시내로, 조선 시대 밀양읍성을 따라 조성한 방어용 해자다. 근대 이후 읍성과 함께 사라진 해천은 몇 년 전 복원돼 시민의 산책로 겸 휴식 공간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에 항일운동 벽화를 더한 것이다.


밀양의 만세 운동 벽화로 시작하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는 태극기의 종류와 변천사를 거쳐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으로 이어진다. 조선의용대는 김원봉과 윤세주가 주축이 되어 만든 독립운동 단체다. 요인 암살과 기관 파괴 중심이던 의열단 투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맞설 무장 부대를 조직한 것이다. 이후 조선의용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했고, 조선의용대장 김원봉은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됐다.


일제강점기 내내 해외에서 항일 독립 투쟁에 앞장선 약산은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와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 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미군정이 다시 고용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온갖 수모를 겪고, 뜻을 함께한 여운형마저 암살당하는 등 남한에서 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으로 분단을 막기 위해 김구와 같이 삼팔선을 넘어가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한 김원봉은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북한 정권에 참여했으나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에 빼곡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훈장이나 표창이 없는 이는 약산 김원봉이 유일하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 유공자 서훈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약산은 남과 북에서 모두 잊힌 독립운동가다.

의열기념관에서 500m쯤 떨어진 밀양 관아지는 1919년 3월 13일, 밀양 최초로 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경성(서울)으로 간 윤세주는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3·1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와, 19세에 밀양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여기에는 김원봉과 윤세주의 스승이자 동화학교 교장을 지낸 전홍표의 도움이 컸다. 함께 경성에 간 윤치형 등과 거사를 준비한 윤세주는 밀양 장날인 3월 13일에 태극기 수백 장을 나눠주며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이곳에는 밀양군청 건물이 있었고, 바로 앞이 밀양시장이라 많은 사람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현재의 관아 건물은 모두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윤세주와 윤치형은 일제의 검거를 피해 만주로 망명, 의열단원이 되어 평생 항일 독립운동에 매진한다.


밀양 영남루(보물 147호)도 항일 독립운동과 연결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영남루에는 현판과 시문이 많은데, 이중에 김원봉이 입학한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의 집안 아저씨인 귤산 이유원의 글씨가 있다. 영남루 맞은편에는 단군을 모신 천진궁이 있는데, 이회영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이시영은 해방 후 이곳에 와서 단군 봉안회를 치렀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꼽히는 영남루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밀양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밀양의 독립운동 역사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밀양독립운동기념관으로 가자. 건물 마당에는 김원봉과 윤세주를 포함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36명의 흉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밀양 만세 운동의 풍경이 생생한 디오라마로 펼쳐진다. 밀양에서는 3·13 만세 운동을 필두로 8차례 만세 시위가 있었다.

여기에는 계급과 이념, 종교를 초월해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이어지는 전시실에는 의열단에서 시작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자세히 소개된다. 김원봉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졸업생 중에는 시인 이육사의 이름도 보인다.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김원봉의 활동, 동맹휴업과 노동쟁의, 사회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밀양 사람들의 투쟁도 살펴볼 수 있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과 나란히 자리한 밀양시립박물관은 독립운동의 요람이 되기 전, 선비의 고장 밀양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공룡과 익룡 등 다양한 고생물 화석이 있는 화석전시실도 빼놓을 수 없다. 밀양시립박물관 바로 옆은 산책로와 놀이 시설을 갖춘 밀양아리랑대공원이다. 공원 안쪽에 한국전쟁 전사자를 기리는 충혼탑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의열단에서 한국전쟁 전사자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우리 역사에 면면히 흐른다.


〈당일 여행 코스〉
의열기념관→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밀양 관아지→밀양 영남루→밀양독립운동기념관→밀양아리랑대공원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의열기념관→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밀양 관아지→밀양 영남루→밀양독립운동기념관→밀양아리랑대공원
둘째 날 / 표충사→시례호박소→월연정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밀양시 문화관광 http://tour.miryang.go.kr
- 의열기념관 www.euiyeol815.or.kr
- 밀양독립운동기념관 www.miryang815.or.kr
- 밀양시립박물관 http://museum.miryang.go.kr

○ 문의 전화
-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055)359-5646
- 의열기념관 055)351-0815
- 밀양 영남루 055)359-5590
- 밀양독립운동기념관 055)359-5589
- 밀양시립박물관 055)354-3294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밀양,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회(08:10~18:30) 운행, 약 4시간 소요. 밀양버스터미널에서 1번·1-1번·2번·3번·3-1번·4번·4-2번·5번·6번·7-1번·9번 버스 이용, 북성사거리 정류장 하차, 도보 약 5분.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밀양시버스정보시스템 http://bis.miryang.go.kr
[기차] 서울역-밀양역, KTX 하루 15~19회(05:05~22:10) 운행, 약 2시간 30분 소요. 밀양역에서 1번·1-1번·3번·3-1번·7번·7-1번 버스 이용, 시민약국 맞은편 정류장 하차, 도보 약 5분.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밀양시버스정보시스템 http://bis.miryang.go.kr

○ 자가운전 정보
중앙고속도로 밀양 IC→북성로 우회전, 763m 이동→하송정1길 좌회전, 586m 이동→의열기념관

○ 숙박 정보
- 칸모텔(구 코리아나모텔) : 밀양시 시청서1길, 055)356-9005,
https://blog.naver.com/bayahyu
- 미니모텔 : 밀양시 범북1길, 055)356-2225
- 밀양관광호텔 : 밀양시 가곡7길, 055)356-3882

○ 식당 정보
- 단골집 : 돼지국밥, 밀양시 상설시장3길, 055)354-7980
- 가향 : 한식, 산외면 산외로, 055)353-3399
- 광명회식당 : 향어회, 상동면 안인1길, 055)354-6185

○ 주변 볼거리
표충사, 얼음골, 시례호박소, 월연정, 위양못 이팝나무, 만어사, 종남산, 재약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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